1990년대, 오락실에 비치되어 있던 자동차 경주 게임을 즐겨 본 분들은 단순해 보이는 모양의 경주장에 홀려 8바퀴를 내리 뱅뱅 돌면서 압도적인 속도감을 느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러한 속도감에 반해 하염없이 100원짜리 동전을 투입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들려오는 경주차들의 시동 거는 소리, 그리고 힘차게 들려오는 코멘테이터의 'Gentleman, Start Your Engines' 목소리, 그 뒤 시트 양쪽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 그리고 잠깐 동안의 데모 영상을 보여주면서 대문짝만하게 영어 이름으로 된 게임 제목이 오른쪽에서부터 밀려옵니다. 그 이름은 데이토나 USA. 당시에는 그저 게임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실제로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그 이름은 미국의 실존하는 나스카 서킷 이름을 따 와서 지은 것이었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명작 레이싱 게임의 작명에 영향을 주기까지도 한 이 서킷은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500에 버금가는 인기와 위상을 자랑하는 데이토나 500. 사진은 2015 시즌 데이토나 500의 시작 장면입니다.
데이토나 인터네셔널 스피드웨이는 세 개의 레이아웃이 존재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레이아웃은 단연코 스피드웨이 레이아웃인 '트라이-오벌'이 되겠습니다.
당시 세가는 북미 현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산물 중 하나가 바로 현재의 레이싱 게임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희대의 명작인 데이토나 USA입니다. 이 게임은 세가의 핵심급 개발 팀인 AM2 부서에서 만들어졌고, 레이싱 게임으로서의 거의 최초로 고정 60프레임을 지키는 최고급 스펙을 지녀 당대 최고의 레이싱 게임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위의 게임은 여러분들도 대략 다 눈치채셨겠지만, 저 게임은 세가에서 1994년에 발매한 데이토나 USA입니다. 이 게임은 당시 세가가 프랜차이즈 캐릭터인 소닉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북미를 공략하던 중, 북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중 하나가 나스카 경기인 것을 파악하여 그들의 취향에 맞추어 개발한 레이싱 게임입니다. 그 중에서 초보자 난이도에 있는 타원형 서킷이 데이토나 인터네셔널 스피드웨이(실제 레이아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였고요. 이 게임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고정 60FPS를 달성하며 이로 인한 극한의 속도감을 표현하게 해 주는 것에 성공했고, 게임 자체도 그로 인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후속작이 2편이나 더 나오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트랙과 차량 선택 후, 코멘테이터가 들려 주는 경기 개시 사운드는 전율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사진은 비기너 서킷 선택 시(데이토나의 모델이 된 쓰리 세븐 스피드웨이) 출력되는 롤링 스타트 장면.
데이토나 인터네셔널 레이스웨이는 이런 레이싱 게임에 영향을 주게 할 정도의 인지도를 지닌 서킷입니다. 이 서킷은 미국의 나스카 경기 역사의 반 이상을 함께 해 왔고, 나스카 경기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인기를 지닌 경기 중 하나인 데이토나 500 경기를 주관하는 서킷이기도 합니다. WEC 스포츠카 챔피언십이 어느 트랙을 다 우승한 것보다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하나만 우승하는 것이 더욱 더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과 같이, 나스카 경기도 인디애나폴리스 500이나 데이토나 500 경기를 이기는 것이 인지도와 상금을 더 높이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공공연히 불릴 정도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데이토나 서킷의 인기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죠.
https://goo.gl/maps/2hraYtGp3eDtViMr9
데이토나 인터네셔널 레이스웨이는 미국 플로리다 주 데이토나 비치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다만 데이토나 비치는 말 그대로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고, 서킷 자체가 바다를 바로 끼고 있지는 않습니다. 서킷의 바로 옆에는 데이토나 비치 국제 공항이 자리잡고 있으며, 서킷 안에는 인공 호수인 로이드 호수(Lake Lloyd)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로 데이토나에서 열리는 경기나 이벤트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서킷에 진입할 수 있으니 접근성으로는 세계의 어느 서킷과 비교해 보아도 매우 좋은 편에 속합니다.
데이토나 서킷 안에 위치한 로이드 호수의 모습.
이 서킷은 세 개의 레이아웃이 존재합니다. 우선 가장 인지도가 높은 트라이-오벌(Tri-oval)과 스포츠카 코스(Sports Car), 그리고 모터사이클 코스(Motorcycle)입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쓰임새가 정해져 있는데, 트라이오벌 서킷은 나스카 경기를 위해, 스포츠카 서킷은 IMSA 스포츠카 레이싱을 위해, 그리고 모터사이클 코스는 말 그대로 오토바이 레이스를 위해 조성한 서킷입니다. 각 레이아웃의 설명은 하단의 캡션을 참조하세요.
트라이-오벌 코스는 뱅킹각 31도에 스타팅 라인은 18도의 경사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길이는 4.02km이며, 프론트 스트레치의 직선 길이는 총 1,200미터에 달합니다. 그리고 백 스트레치의 길이는 910미터입니다. 이 레이아웃은 2010년에 재포장 작업을 실시하였으며, 13만 제곱미터를 재포장하는 데에 5만 톤의 아스팔트가 소모되었다고 합니다.
IMSA 스포츠카 챔피언십에 사용되는 스포츠카 코스. 이 곳은 1962년부터 데이토나 콘티넨탈(Daytona Continental)이라 불리는 3시간 길이의 스포츠카 레이싱을 위해 만들어진 코스입니다. 그리고 1966년부터 우리가 현재까지 알고 있는 24시간 내구 레이스로 바뀌게 되었죠. 르망 24시간과 다른 점이라면, 르망은 6월 중간에 하기 때문에 일조량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치러지지만 데이토나 24시간은 한겨울에 치러진다는 것입니다. 즉, 르망보다 더욱 빨리 해가 지기 때문에 야간 레이스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물론 르망과는 달리 경기장에 조명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헤드라이트를 쓰지 않는 일을 막기 위해 평소의 출력보다 80%를 낮춘 20%의 밝기만을 제공해 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터사이클 코스입니다. 이 곳은 여타 다른 서킷들이 그러하듯이 AMA에서 주관하는 스포츠바이크 레이싱의 주요 격전지가 되는 곳 중 하나로, 데이토나 200 경기를 치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레이아웃은 온전히 모터사이클을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코스로, 2005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스포츠카 코스에서 쓰이는 오벌 1번과 2번은 모터사이클이 진행하기에는 뱅킹각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생략되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의 레이아웃 덕분에 데이토나 서킷은 같은 자동차라도 전혀 다른 형식으로 경주할 수 있는 서킷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데이토나 500과 같은 나스카 경주는 물론이고,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코너를 빠져나가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관중들을 위한 스포츠카 챔피언십 경기도 스포츠카 코스에서 매년 치러지고 있어서 자동차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