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브랜즈 해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국의 자동차 경주의 역사를 책임진 이 곳은 1920년대부터 시작되어 60년대~80년대까지 이어진 포뮬러 원, 90년대의 BPR 글로벌 GT 시리즈를 이어 2000년대의 DTM, WTCC와 함께 브리티시 트럭 레이싱까지 펼쳐지는, 영국에서 실버스톤과 함께 영국의 모터 레이싱의 성지로 추앙받는 곳입니다. 무엇이 이 서킷을 만들게 했고, 또 여기에서 어떠한 드라마가 쓰여 졌길래 이 곳이 중요한 곳으로 대접 받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 곳에서 브랜즈 해치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랜즈 해치 전도. 처음에는 2km가 채 안되는 수준이었던 작은 서킷이 F1을 개최할 정도로 규모가 확대된 이후로 여태까지 영국의 모터 레이싱의 산 증인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브랜즈 해치 전도. 처음에는 2km가 채 안되는 수준이었던 작은 서킷이 F1을 개최할 정도로 규모가 확대된 이후로 여태까지 영국의 모터 레이싱의 산 증인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개요: 영국 레이싱의 시초와 현재까지 아우르는 서킷


영국 켄트(Kent) 주의 웨스트 킹스다운(West Kingsdown)에 자리잡고 있는 브랜즈 해치 서킷은 FIA 그레이드 2를 만족하는 서킷으로, F1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서킷입니다. 레이아웃은 현재 2가지를 제공하며, 개장 초기(1926~1950년까지)와 현재 단거리 레이스를 위해 사용하는 '인디 서킷'(Indy Circuit), 1960년대에 F1을 유치하기 위해 구간을 연장한 '그랑프리'(Grand Prix) 레이아웃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디 서킷 레이아웃은 위 사진 기준으로 쿠퍼 스트레이트(Cooper Straight)를 지나 서티스(Surtees)를 반만 지나 바로 회색 처리된 멕라렌(McLaren) 코너를 지나 바로 클라크 커브(Clark Curve)를 지나는 꽤나 단순한 레이아웃이며, 그랑프리 레이아웃은 검은색 구간으로 처리된 곳을 달리게 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잘한 변경은 있었으나, 전반적인 레이아웃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어 왔습니다.

브랜즈 해치는 인디 서킷 레이아웃에서 출발해 60년대 F1을 유치하기 위해 연장한 GP 서킷으로 이어졌습니다.

브랜즈 해치는 인디 서킷 레이아웃에서 출발해 60년대 F1을 유치하기 위해 연장한 GP 서킷으로 이어졌습니다.

레이아웃 자체는 뭔가 단순하게 보입니다만, 이 중에서 고저차가 없는 커브는 드루이드(Druids) 헤어핀 코너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코너들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나 스타팅 라인을 지나자마자 낙하하듯이 아래로 빠지는 패독 힐 벤드(Paddock Hill Bend) 코너가 매우 유명하고, 호쏜(Hawthorns), 웨스트필드(Westfield), 그리고 쉰느 커브(Sheene Curve)도 미묘한 코너 각도와 고저차의 들쑥날쑥한 변화로 공략하기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로 인하여 전반적인 서킷의 공략이 중속에서 얼마나 코너를 잘 깎아 나가는가에 따라 랩 타임이 확 차이가 나며, 추월 자체도 코너를 잘 공략한 뒤의 탈출 가속을 이용해 직선 주로에서 추월하는 패턴의 주행이 주가 됩니다.

시작하자마자 오른쪽으로 쭉 낙하하는 듯한 느낌으로 공략해야 하는 패독 힐 벤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까다롭기도 합니다.

시작하자마자 오른쪽으로 쭉 낙하하는 듯한 느낌으로 공략해야 하는 패독 힐 벤드.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까다롭기도 합니다.

브랜즈 해치는 그 긴 역사에 걸맞게 무척이나 많은 레이스를 치러 왔습니다. 1980년대에는 F1을 유치하기도 하였죠.

브랜즈 해치는 그 긴 역사에 걸맞게 무척이나 많은 레이스를 치러 왔습니다. 1980년대에는 F1을 유치하기도 하였죠.

지금은 블랑팡 GT 시리즈, 투어링 카 챔피언십과 심지어 트럭 레이스를 치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과거 여기를 달렸던 역사적인 레이스 카를 그 때 그 시절처럼 달리는 히스토릭 이벤트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2015시즌 블랑팡 GT 시리즈에서.

지금은 블랑팡 GT 시리즈, 투어링 카 챔피언십과 심지어 트럭 레이스를 치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과거 여기를 달렸던 역사적인 레이스 카를 그 때 그 시절처럼 달리는 히스토릭 이벤트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2015시즌 블랑팡 GT 시리즈에서.

현재 브랜즈 해치는 여느 유명 서킷과 같이 유명한 레이스를 유치하고 있는데, 영국 투어링 카 챔피언십, 블랑팡(Blancpain) GT 시리즈 스프린트 컵, 그리고 DTM에 이르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영국 포뮬러 원 그랑프리를 유치한 경력이 있으며, 1980년대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 중 1000마일 내구 레이스인 브랜즈 해치 1000을 개최하여 전설적인 그룹 C 레이스 카들이 700마력을 육박하는 힘으로 서킷을 종횡무진하며 경쟁을 이어 왔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저 유명한 BPR 글로벌 GT 시리즈(BPR Global GT Series, 1992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국제적 스포츠 카 레이싱 단체, 1994년에 첫 시즌을 시작했고 1997년에 FIA GT 챔피언십으로 변경)를 치러 여러 유명 차량들이 치고박고 하는 명경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없어졌으나 1982년도부터 1994년까지는 랠리크로스 경기도 치러졌었던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역사적인 레이싱 카들을 불러 놓고 달리는 마스터즈 히스토릭 페스티벌(Masters Historic Festival)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한 카탈루냐 서킷과 마찬가지로 2012년 하계 패럴림픽 중에서 로드 사이클 경기를 이 서킷에서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역사: 1920년대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곳


브랜즈 해치의 역사는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 현재 위치인 켄트 주의 웨스트 킹스다운은 본래 군사 훈련용 토지로 사용되고 있었고, 땅의 소유권은 브랜즈 해치 농장의 주인이자 토지의 소유주였던 해리 화이트(Harry White)에게 있었습니다. 이 토지를 론 아전트(Ron Argent)를 필두로 한 사이클리스트들이 해리에게 접촉, 이 곳을 사이클링 연습 장소로 사용해도 되느냐고 협상을 진행하였고, 해리는 승낙하였습니다. 그런 뒤 그는 곧바로 농업용 기계를 사용해 비포장 도로를 만들었고, 이 장소는 한동안 런던 지역의 사이클리스트들에게 성지와도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1928년, 이 곳에서 최초로 레이스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때는 자동차 경주가 아닌, 사이클리스트들과 크로스 컨트리 주자들 간의 경주였다는 것이죠. 심지어 더욱 놀라운 것은, 크로스 컨트리 주자가 우승하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 사이에서는 재키 후빈(Jackie Hoobin)이라는 당시 걸출한 선수가 있었다고는 하나, 자전거를 탄 사람과 그냥 발로 달리는 사람들과의 속도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이긴 했습니다.

이후 몇 년간은 오토바이 경주로 사용되기도 했고, 1930년대까지는 연습장으로, 그리고 경주용 서킷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지만 이후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군사용 차량 보관소로 사용되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적의 폭격 공습으로 인해 매우 황폐화되어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 이후 이 곳이 전문적인 레이싱 서킷으로 재탄생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1950년 4월. 브랜즈 해치 서킷이 영국 최초의 전후 레이싱 서킷으로서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레이싱 서킷으로 재탄생한 뒤 최초의 레이스는 500cc급의 포뮬러 3 레이스였고, 7,000명의 관객이 모여 역사적인 첫 레이스를 관람했습니다. 1953년과 1954년에는 트랙이 확장되었는데, 포뮬러 3 경기가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그로 인해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주를 원하게 되어 트랙을 더 까다롭게 개정하였습니다. 패독 힐 벤드에서 바로 보텀 힐 스트레이트(현재의 쿠퍼 스트레이트)로 이어지던 구성이 드루이드 헤어핀을 추가하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반시계 방향, 즉 현재와는 다른 역방향이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계방향으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총연장 1.24마일, 2km의 서킷으로 바뀌었습니다.

1953년에 바뀐 브랜즈 해치. 패독 힐 벤드에서 보텀 벤드(Bottom Bend)로 이어지던 코너가 드루이드 헤어핀을 추가하는 구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스타트 위치도 반시계 방향에서 시계 방향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1953년에 바뀐 브랜즈 해치. 패독 힐 벤드에서 보텀 벤드(Bottom Bend)로 이어지던 코너가 드루이드 헤어핀을 추가하는 구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스타트 위치도 반시계 방향에서 시계 방향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포뮬러 3의 인기로 인해 서킷이 바뀌었을 정도였으나, 더욱 큰 덩치와 배기량을 자랑하는 포뮬러 리브르 차량이 등장한 뒤로 포뮬러 3는 인기를 잃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956년에는 최초로 포뮬러 원 차량이 달리기 시작했고, 코노트(Counnaught) B-타입과 그에 맞서는 마세라티 250F 간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1950년대 전반은 포뮬러 3, 2와 주니어 클래스의 정기적인 개최로 생기를 띄었습니다.

1964년에 치러진 영국 그랑프리 레이스. 선두 짐 클라크의 로터스 25가 조 시퍼트(Jo Siffert)의 브라밤 BT11을 따돌리고 있습니다.

1964년에 치러진 영국 그랑프리 레이스. 선두 짐 클라크의 로터스 25가 조 시퍼트(Jo Siffert)의 브라밤 BT11을 따돌리고 있습니다.

포뮬러 원 뿐만 아니라 여러 클로즈드 휠 방식의 경주용 차 레이스도 진행하였습니다. 1968년 당시 유럽 스포츠 카를 이기기 위해 미국에서 캐롤 쉘비와 포드가 만든 역작, 포드 GT40이 달리는 모습.

포뮬러 원 뿐만 아니라 여러 클로즈드 휠 방식의 경주용 차 레이스도 진행하였습니다. 1968년 당시 유럽 스포츠 카를 이기기 위해 미국에서 캐롤 쉘비와 포드가 만든 역작, 포드 GT40이 달리는 모습.

이외에도 여러 미국 차들이 브랜즈 해치를 달렸습니다. 같은 캐롤 쉘비가 만든 쉘비 코브라 427 S/C.

이외에도 여러 미국 차들이 브랜즈 해치를 달렸습니다. 같은 캐롤 쉘비가 만든 쉘비 코브라 427 S/C.

1964년 브랜즈 해치 6시간 내구 레이스의 참전 차량 명단.

1964년 브랜즈 해치 6시간 내구 레이스의 참전 차량 명단.

1960년 들어 켄트 카운티 의회는 당시 브랜즈 해치의 2배에 달하는 연장 계획을 승인합니다. 이는 이전까지 쓰이던 구 서킷을 단거리 레이아웃으로, 그리고 신설되는 연장 거리 부문을 장거리 레이아웃으로 이원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총연장이 2.65마일 늘어났고, 드디어 포뮬러 원 경기를 개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거듭나 런던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세계적 수준의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브랜즈 해치를 홍보하는 문구도 '영국은 이제부터 런던에서 20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랑프리 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였습니다.

1964년에 영국 그랑프리가 개최되었지만, 1986년까지는 실버스톤 서킷과 병행 운영되어 짝수 해는 브랜즈 해치, 홀수 해는 실버스톤에서 경기를 진행하였습니다. 1964년도 그랑프리 첫 개최 이후 첫 우승은 짐 클라크가 모는 로터스 25가 차지했습니다.

1967년에는 이벤트격 경주인 레이스 오브 챔피언스(Race of Champions)를 개최, 미국인인 댄 거니(Dan Gurney)가 자국산 포뮬러 원 자동차인 이글-웨스트레이크(Eagle-Westlake) T1G를 몰고 참전하여 우승, 2위에는 혼다 RA300을 운전한 존 커티스(John Curtees)가 2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오픈 휠의 포뮬러 원 이외에도 클로즈드 휠의 레이싱 카들도 1960년대의 브랜즈 해치를 질주했는데, 당시 치러졌던 매뉴팩쳐러즈 월드 챔피언십(Manufacturer's World Championship)에서 재키 익스(Jackie Ickx)와 브라이언 레드먼(Brian Redman)이 몬 포드 GT40 Mk.1이 포르쉐 908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역사적인 레이스도 브랜즈 해치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런저런 레이스가 많이 펼쳐졌으며, 또한 이 때는 각종 레이스 스타와 언더독들이 반란을 일으킨 흥미진진한 레이스가 많이 치러져 브랜즈 해치의 1960년대는 쉴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1964년에 연장된 브랜즈 해치. 지금이랑 비교하면 보텀 벤드 쪽이 더 굽이져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1964년에 연장된 브랜즈 해치. 지금이랑 비교하면 보텀 벤드 쪽이 더 굽이져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후 1970년대가 되어 포뮬러 원은 더욱 고도로 에어로다이나믹이 중요해지고 그에 맞춰 더욱 빨라지는 진화를 거듭하였습니다. 1974년의 레이스 오브 챔피언스에서는 똑같이 재키 익스가 모는 로터스-포드 72E로 1위를, 그리고 70년대 포뮬러 원의 역사에 남는 전설적인 인물인 니키 라우다가 페라리로 2위를 기록하고 브라질 출신의 또다른 포뮬러 원의 전설급 존재인 에메르손 피티팔디(Emmerson Fittipaldi)가 3위를 기록하면서 포뮬러 원의 전국시대를 열었고, 돌아오는 1976년에는 니키 라우다의 영원한 라이벌인 제임스 헌트가 가세하면서 브랜즈 해치의 열기를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1974년의 니키 라우다가 페라리 312로 힘을 과시했고...

1974년의 니키 라우다가 페라리 312로 힘을 과시했고...

1976년에는 제임스 헌트의 멕라렌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1976년에는 제임스 헌트의 멕라렌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