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s National Park of Speed" 로드 아메리카 코스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코스는 1950년대부터 북미 지역에서 열린 거의 모든 레이싱을 책임 져 왔으며, 현재도 북미 지역하면 떠오르는 나스카 시리즈, 인디카 시리즈는 물론 스포츠카 챔피언십과 트랜스 앰 시리즈까지 통틀어 유치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유서 깊은 서킷입니다. 이를 두고 오픈휠 레이싱 저널리스트인 로빈 밀러(Robin Miller)는 로드 아메리카를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The best test of road racing in North America". 북미 로드 레이싱에 있어 최고의 시련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서킷은 어떤 특징과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로드 아메리카 서킷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드 아메리카 서킷의 전도. 스트레이트들과 예리한 코너들의 조합이 어우러진 매우 어려운 코스 중 하나입니다.

로드 아메리카 서킷의 전도. 스트레이트들과 예리한 코너들의 조합이 어우러진 매우 어려운 코스 중 하나입니다.

특징: 시원한 스트레이트, 날카로운 코너들의 조합


로드 아메리카는 미국 위스콘신(Wisconsin) 주 엘크하트 레이크(Elkhart Lake)에 위치한 영구 폐쇄 레이싱 서킷입니다. 엘크하트 레이크는 위스콘신 주도인 밀워키(Milwaukee) 시와 그린 베이(Green Bay)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1955년 건설한 이후, 지금은 일 년에 400개 이상의 이벤트를 치러 왔습니다. 현재는 3개의 모터사이클 이벤트, 3개의 빈티지 카 이벤트, SCCA 이벤트와 나스카 이벤트 등을 개최하고 있는 중입니다.

로드 아메리카 서킷에 입장하면 이렇게 큰 입간판이 방문자들을 반겨줍니다.

로드 아메리카 서킷에 입장하면 이렇게 큰 입간판이 방문자들을 반겨줍니다.

로드 아메리카만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개최 당시의 레이아웃과 지금의 레이아웃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1955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레이아웃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세계 어느 트랙을 살펴보더라도 이런 경우는 매우 희귀한데, 이는 처음부터 레이싱 서킷으로서의 완성도가 뛰어났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1979년 당시의 로드 아메리카 전도. 보시다싶이 레이아웃의 차이는 없고 주변 부대시설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당시 랩 레코드는 1973년 마크 도너휴(Mark Donohue)가 포르쉐-아우디 917로 세운 1분 57초 5입니다.

1979년 당시의 로드 아메리카 전도. 보시다싶이 레이아웃의 차이는 없고 주변 부대시설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당시 랩 레코드는 1973년 마크 도너휴(Mark Donohue)가 포르쉐-아우디 917로 세운 1분 57초 5입니다.

이 서킷은 총연장 6.515km의 길이와 14개의 코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길이로 따지면 꽤나 긴 서킷이며, 길이 대비 코너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매 코너가 각기 다른 성향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을 강요하는 꽤나 힘든 코너들의 연속입니다. 그렇지만 이 서킷을 더욱 특별히(즉,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고저차의 변화입니다. 이 서킷에는 꽤나 많은 고저차 변화 구간이 있으며, 몇몇 곳은 아예 코너 직전에 급격하게 오르막을 만들어 놓아 다음 코너의 브레이킹 포인트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테크니컬한 코너가 주로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고속으로 빠져나가야만 해서 드라이버의 담력을 시험하게 만드는 11번 코너인 일명 '킹크'(Kink)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직전에 있는 중고속으로 180도 가까이 돌아 나가는 9~10번 코너인 '카로셀'(Carousel)도 만만찮은 난이도로 악명이 높습니다.

9~10번 코너인 카로셀, 그리고 그 이후 바로 이어지는 11번 코너인 킹크가 이 서킷의 백미로 불리고 있습니다.

9~10번 코너인 카로셀, 그리고 그 이후 바로 이어지는 11번 코너인 킹크가 이 서킷의 백미로 불리고 있습니다.

로드 아메리카는 북미에서 인기가 있는 모든 레이스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그 중에서도 인기 1,2위를 다투는 인디카 레이스.

로드 아메리카는 북미에서 인기가 있는 모든 레이스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그 중에서도 인기 1,2위를 다투는 인디카 레이스.

그 외에는 카로셀 코너 안쪽에 카트 경기장을 지어 놓아 모터스포츠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십대 청소년들을 위한 운전 강습 프로그램도 이 서킷에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레이스 뿐만이 아닌 여러 가지 부대 시설과 운전 강습 프로그램, 투르 드 로드 아메리카-자전거 이벤트- 등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도 상시 운영 중에 있어서 로드 아메리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만 하더라도 80만 명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 서킷 하나만으로도 지역 사회에 가져다 주는 이익이 1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위성 지도로 본 로드 아메리카. 카로셀 쪽에 있는 작은 서킷이 카트 경기장입니다. 그 이외에도 5번과 13번을 잇는 단거리 레이아웃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성 지도로 본 로드 아메리카. 카로셀 쪽에 있는 작은 서킷이 카트 경기장입니다. 그 이외에도 5번과 13번을 잇는 단거리 레이아웃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인 서킷에 사고가 빠질 순 없겠죠. 2015년 CCR 페라리 챌린지 경기 중에 일어난 사고입니다. F430과 458 간의 치열한 배틀 끝에 458이 430의 후미에 접촉한 후 양력이 발생, 그대로 공중으로 떠 버린 사고입니다. 다행히 사고가 난 당사자는 가벼운 부상만 당하고 문제 없이 회복했다고 합니다.

썸네일만 봐도 사고의 스케일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공중으로 뜬 뒤 펜스에 충돌한 사고이며, 전술했듯이 큰 부상은 없습니다.

썸네일만 봐도 사고의 스케일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공중으로 뜬 뒤 펜스에 충돌한 사고이며, 전술했듯이 큰 부상은 없습니다.

역사: 북미 레이싱 역사를 책임져 온 산 증인


로드 아메리카는 북미 레이싱 서킷에서도 역사로 따지면 2~3위에 듭니다. 세계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인디애나폴리스 레이스 서킷을 제외하면 왓킨스 글렌, 라구나 세카 급으로 역사가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드 아메리카의 역사는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위스콘신 주에서 열리는 경기는 공도에서 치러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현재 로드 아메리카가 위치해 있는 엘크하트 레이크 주변의 공도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얼마 가지 않아 위스콘신 주의 입법부에서 공도에서의 레이스를 금지하게 되었습니다(사실 이 결정은 왓킨스 글렌의 공도 레이싱에서 벌어진 사망사고가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레이스가 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클리프 터프트(Clif Tufte)입니다.

한창 공사 중인 로드 아메리카의 모습.

한창 공사 중인 로드 아메리카의 모습.

그는 이러한 조치가 발표되고 난 후 곧바로 SCCA의 시카고 지부 소속의 지도자들과 위스콘신 주의 큰 세력을 보유한 시민들을 불러 모아 조직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들은 레이스 트랙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짰으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심지어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525에이커의 엘크하트 레이크 쪽의 농장 지대를 매입한 후, 터프트 본인의 직업이었던 고속도로 엔지니어였던 경험을 살려 현재의 레이아웃을 건설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꿈은 1955년 4월에 빛을 보았습니다. 현재의 로드 아메리카가 건설을 완료하였고, 동년 9월 10~11일에 SCCA 국내 레이스가 처음 열렸습니다. 148마일의 중장거리 레이스에, 당시 기준으로 대형급 스포츠 카 레이스가 참여한 이 경기에서 페라리 몬차를 탄 캘리포니아 주 출신의 필 힐(Phil Hill)이 로드 아메리카 서킷에서의 첫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 이후, 프로급 주말 레이스 경기는 1956년 8월에 열린 나스카 그랜드 내셔널 레이스가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로는 아직 유명세를 타지 못한 서킷이었기 때문에 이틀간 열린 레이스에도 불구하고 만 명 정도의 관중에 오는 것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 경기에서는 재규어 마크 7형 세단을 운전한 폴 골드스미스(Paul Goldsmith)가 토요일 경기에서, 일요일에는 머큐리 세단을 운전한 팀 플록(Tim Flock)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