ようこそ!일본을 넘어 범아시아적으로 제일 유명한 서킷인 스즈카 서킷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곳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서킷이자 일본에서 유이한 FIA 그레이드 1 인증을 받은 서킷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F1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시라면 이 곳에서 F1의 세기의 라이벌들이 3년에 걸쳐 벌인 각축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킷의 설립 배경마저도 한 자동차 회사의 회장이 자사의 차량의 성능을 시험하고 검증하기 위해서 만든 곳이라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력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서킷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섬세하게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즈카 서킷의 전도. 보시다시피 연속된 중저속 커브들과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헤어핀과 시케인의 조합이 예술입니다.
우리는 흔히 스즈카 서킷이라고 부르지만, 이 서킷의 정식 명칭은 '스즈카 국제 레이싱 코스'(鈴鹿国際レーシングコース, 스즈카 코쿠사이 레-싱구 코스)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서킷은 일본의 미에 현(三重県), 스즈카 시(鈴鹿市)에 위치해 있으며, 서킷의 소유주는 모빌리티 랜드(Mobility Land)라고 불리우는 회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그냥 평범한 회사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이 모빌리티 랜드의 모회사가 혼다로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서킷은 원래 혼다가 자사 차량의 성능 및 내구성 테스트를 위해 건설한 곳입니다.
위에 나와 있는 서킷의 모습을 보시면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서킷은 8자형 서킷으로 되어 있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아주 특이한 형상의 코스입니다. 9번 코너에서 바로 서킷의 반대 방향으로 통과하는 모습이 숫자 8을 닮아서 붙여진 특성입니다. 이러한 특징이 스즈카 서킷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죠.
위성 사진으로 본 스즈카 서킷.
서킷의 코너를 보시면, 말 그대로 쉴 틈을 잘 주지 않는 커브들이 여러분을 반겨 줍니다. 처음 보이는 1~2번 퍼스트 턴(First Turn)은 스파 프랑코샹의 뿌옹 코너와 비슷하게 더블 에이펙스로 되어 있어 호흡을 엇나가게 만들고, 3~7번까지 이어지는 S 커브들은 각자의 각도와 고도 변화마저 제각각이라 드라이버들 사이에서는 '무호흡 코너'라고도 불립니다. 각자 공략법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숨을 멈추고 7번 코너까지 자신만의 라인으로 연속된 S자 커브를 공략해야만 한다는 의미로써 불립니다.
8번에서 보이는 데그너 커브(Degner Curve)는 1962년 치러진 전일본 챔피언십 로드 레이스 미팅에 참여한 스즈키 모터사이클 팀 소속의 동독인 에른스트 데그너(Ernst Degner)가 팀의 스즈키 50cc 바이크를 주행하다가 해당 코너에서 큰 사고가 발생한 것을 기려 붙여진 이름인데, 둔각으로 되어 있는 모습이 방심하게 만들기 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코너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그 전의 코너들에서 빠져나온 뒤의 속도가 이 코너를 호락호락 지나가게 두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제동 타이밍을 놓치는 순간 바로 코스 아웃으로 이어지게 만들게 하죠. 뒤이은 9번 코너는 직각이기 때문에 데그너 코너를 돌파한 뒤 곧바로 풀 브레이킹을 요구합니다. 그 뒤로 잠깐 동안의 스트레이트를 지나간 뒤, 완만한 10번 코너를 지나치자마자 바로 급제동을 해야 합니다. 11번 헤어핀 때문입니다.
카시오 시케인을 빠져나오면 보이는 관람차. 스즈카 서킷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1번 헤어핀은 또다시 급격한 제동을 요하며, 높아야 2단, 대부분은 1단 기어로 돌아야 겨우겨우 돌파 가능한 정도로 완전한 180도 헤어핀 코너이며, 13~14번의 스푼 커브(Spoon Curve)도 마찬가지로 더블 에이펙스로 돌아 나가는 것을 강요하는 곳입니다. 그 다음은 스즈카에서 가장 긴 스트레이트가 펼쳐지며, 그 다음으로는 스즈카에서 가장 위험한 곳인 130R이 기다립니다. 최고속을 뽑아내는 도중에 갑자기 나오는 코너에 처음 서킷을 도는 분들이라면 당황하여 코스 아웃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감속을 하고 마는 패턴을 만들게 하는 곳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마지막 코너인 카시오 시케인(Casio Chicane)이 펼쳐집니다. 마지막으로 최대한 감속을 하면서 살짝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이 시케인은 특히나 F1의 큰 별들이 서로 맞부딪힌(말 그대로 정말 물리적으로 부딪힌) 유명한 시케인입니다. 이렇게 돌아 나오면 스즈카 서킷의 명물 중 하나인 관람차를 보면서 다시 스타팅 라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스즈카 서킷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F1 일본 그랑프리의 주무대로 선택되어 왔습니다.
서킷 자체는 FIA 그레이드 1급이라는 것을 무색하게 만들지 않게 세계적인 유명 이벤트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우선 일본 국내에서 열리는 최정상급 레이스 이벤트인 슈퍼 GT(Super GT)가 스즈카에서 열리며, 중간에 특별 이벤트인 스즈카 10시간 내구 레이스도 개최 중에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F1 일본 그랑프리가 매년 10월에 스즈카에서 열리며, 일본 국내 포뮬러카 레이스인 슈퍼 포뮬러(Super Formula) 레이스도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월드 투어링 카 레이스인 WTCR은 물론, 일본만의 레이스 문화로 유명한 D1 그랑프리가 열리는 곳입니다. 이렇게 일반 양산차를 개조한 차량을 출전시켜 제조사의 기술력을 뽐내는 스포츠카 이벤트부터 극한의 정교함을 뽐내는 오픈 휠 레이싱, 시원하게 연기를 내뿜으며 호쾌하게 코너를 부드럽게 통과하는 드리프트 경기까지 열리고 있어 볼 거리는 풍성합니다.
최근 WTCR로 재편되어 여러 나라에서 만든 투어링 카들로 육탄전을 펼치는 경기도 절찬리에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일본 자체 리그인 슈퍼 GT도 물론 여기 스즈카 서킷에서 열립니다. 사진은 2017년 스즈카 10시간 내구 레이스에 출전한 굿스마일 레이싱 소속의 하츠네 미쿠 메르세데스 벤츠 AMG GT3.
스즈카 서킷의 레이아웃은 크게 5가지로 분류됩니다. 모터스포츠 풀 서킷, 스타트 라인에서부터 S 커브를 지나 18번 코너로 되돌아오는 동쪽 서킷, 스푼 커브 뒤 직선에서부터 시작해 16번 카시오 트라이앵글에서 우회전해 던롭 커브(Dunlop Curve) 쪽으로 돌아가는 서쪽 서킷의 자동차 서킷과 모터사이클 서킷이 있습니다.
참고로, 국내에서 스즈카 서킷으로 가는 방법은 꽤나 어렵습니다. 미에 현 자체가 일본의 거의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데다가 이로 인해 대중 교통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죠.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루트는 칸사이 국제 공항(KIX)에서 내려 난카이 공항선(南海空港線)을 이용해 난카이난바역(南海難波駅)에서 하차, 그 뒤 도보로 5분 걸어간 뒤 긴테츠 특급(近鉄特急)를 이용해 시로코 역(白子駅)에서 하차, 그 뒤 01스즈카 시내 히라타선(01鈴鹿市内平田線) 버스를 타고 노다역(野田駅)에서 하차해 그대로 서킷으로 걸어가는, 꽤나 험난한 여정이 예상되므로 방문하실 때에는 계획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다의 회장인 혼다 소이치로. 그는 이륜차 사업부로 시작해 모터바이크 레이스에서 최고를 차지한 뒤, 사륜차 사업부인 자동차 업계에서도 최고가 되려는 야망을 가졌고, 그를 위해서 서킷은 최적의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1950년대, 당시 이륜차 메이커였던 혼다(Honda) 사의 회장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는 자사의 오토바이가 당시 최고봉의 무대인 만 섬(島) TT 레이스(Manx TT)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사륜차, 즉 자동차 업계에서도 최고가 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자동차의 성능을 평가할 수 있는 서킷의 건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죠. 그는 곧바로 미에 현의 스즈카 시에서 서쪽으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 서킷의 건설에 착수하였으며, 서킷의 디자인은 네덜란드인인 존 한스 휴겐홀츠(John Hans Hugenholtz)가 담당하였습니다.
스즈카 서킷은 1962년 완공된 뒤 곧바로 혼다 차량의 테스트장으로 이용되는 동시에 자사의 원래 사업부였던 오토바이 경기장으로서도 이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2년의 오프닝 레이스로 제1회 전일본선수권 로드 레이스(全日本選手権ロードレース, 젠닛폰센슈켄 로-도레-스)를 개최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현재까지 4번에 걸친 서킷 수정을 거쳤습니다.
그 후, 1970년대에 들어서 스즈카 서킷은 주로 모터사이클 경기를 위한 서킷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1978년에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스즈카 8시간 내구 레이스도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는 1982년에 혼다가 오랜 공백 후에 F1 세계에 복귀하여 그와 동시에 스즈카 서킷이 F1 캘린더에 추가되며 일본에서 처음으로 F1 그랑프리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당시 FISA(FIA의 전신)의 안전 기준에 만족하기 위한 조치로 첫번째 수정을 실시하였는데, 데그너 커브가 하나의 긴 코너로 되어 있었던 것을 각이 진 두 개의 코너로 바꾸었고, 서킷 전체에 걸쳐 충돌에 대비한 배리어도 증설하는 작업도 거쳤습니다. 이 이후에는 F1 사상 유래없는 라이벌의 운명을 바꾸게 해 버리는 서킷으로 변하게 됩니다.
1988년 F1 일본 그랑프리에서 이 둘의 라이벌 관계는 본격적으로 뜨겁게 달궈지게 됩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뒤로는 선두인 프로스트를 제치는 것에도 성공했습니다.
1988년, 때는 F1에서 한창 격렬한 경쟁이 벌어졌던 시기로,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의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세나는 당시 스즈카로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좋지 못한 성적을 남기고 있었는데, 모나코 그랑프리 이후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 챔피언십 포인트 결산 상 1위를 잡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스즈카에서 우승만 한다면 프로스트의 성적이 어찌 되어도 상관 없이 바로 챔피언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스즈카에서 확보한 순위로 폴 포지션인 1위로 출발했기 때문에 조건은 아주 완벽했었죠. 문제는 스타트 직후였습니다.
세나의 멕라렌 MP4/4의 엔진이 스톨 상태가 되어 버렸고, 이를 알아챈 세나는 두 팔을 흔들면서 도움을 요청하나 싶었더니 바로 출발에 성공했습니다. 다만 이 때문에 순위는 한참 바깥으로 밀려나 버렸고, 남은 랩 수 동안 어떻게든 순위 회복을 해야만 하던 상황이었죠. 우선 세나는 한 랩 한 랩을 오버 페이스 급으로 달려서 순위를 6위까지 회복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이러는 와중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14랩째부터 스즈카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나에게 비는 천운과도 같은 일이며, 동시에 그를 무적으로 만드는 존재였죠. 아니나 다를까, 세나는 더욱 빠른 속도로 선두였던 프로스트를 추격하더니,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그를 추월하는 데 성공하며, 심지어 프로스트의 멕라렌에 기어박스 결함이 발생하여 1위를 굳히는 데에도 성공합니다. 그렇게 세나는 생애 첫 F1 그랑프리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세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레이스 도중 신을 보았습니다' 라고 언급했고, 이 발언은 당시 가장 치열하게 경쟁 중인 프로스트를 자극했고, 이는 다음 해에도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