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내구 레이스 대회인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무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르트 서킷은 개장 이후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서킷이며, 그에 걸맞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서킷입니다. 지금까지 개최된 여러 경기로 수많은 드라이버와 차량이 불멸의 명성을 얻기도 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극도로 위험한 구조로 인해 무수히 많은 드라이버의 목숨을 빼앗아 간 악명 높은 서킷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이 곳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으십니까? 이 글에서는 사르트 서킷의 역사와 특징, 그리고 공략 등을 짚어 나갈 예정입니다.

사르트 서킷 전도. 드라이버들은 빨간색 화살표가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자자하며 또한 극도로 위험한 이 서킷에서 자신의 명예와 팀의 영광, 그리고 자사 메이커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24시간의 혈투에 뛰어듭니다.

사르트 서킷 전도. 드라이버들은 빨간색 화살표가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자자하며 또한 극도로 위험한 이 서킷에서 자신의 명예와 팀의 영광, 그리고 자사 메이커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24시간의 혈투에 뛰어듭니다.

개요 & 특징: 24시간 내구 레이스의 성지


사르트 서킷의 정식 명칭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Circuit des 24 Heures du Mans(시르퀴 드 빙트-퀘트 어흐 두 망), 다른 하나는 Circuit de la Sarthe(시르퀴 드 라 사르트)라고도 불립니다. 전자는 24시간 르망 서킷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우리가 아는 사르트 서킷이라는 뜻이죠. 어느 쪽으로 말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결국 같은 뜻이니까요.

총 길이는 13.626킬로미터로, 현재 최신 레이아웃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는 현재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아주 긴 서킷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긴 길이로 인해 사실상 세 행정 구역에 걸쳐 경주하게 되는데, 르망(Le Mans)에서 출발해 뮬산느(Mulsanne), 그리고 아르나주(Arnage)에 걸쳐 경기를 치루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를 들면 스타팅 그리드가 있는 르망 구는 화창한데 후반부에 들어서는 아르나주 구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기도 합니다. 이는 경주 팀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변수가 되어, 전략의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 서킷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경주용 서킷과는 많이 다른데, 그것은 일반 공공 도로도 함께 공유하면서 쓰는 서킷이라는 점입니다. 즉, 비시즌 때는 평범한 일반 도로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서킷의 정비가 잘 된 아스팔트 구역에서부터 공공도로의 그다지 좋지 못한 포장 상태가 어우러져 경기용 차량의 스트레스를 극한까지 시험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종종 생각하지 못한 변수로 되기도 합니다.

구글 맵으로 표시한 사르트 서킷의 시작점. 매년 6월이 되면 프랑스의 작은 동네는 전세계에서 몰려오는 관람객과 수많은 레이스 팀으로 인해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구글 맵으로 표시한 사르트 서킷의 시작점. 매년 6월이 되면 프랑스의 작은 동네는 전세계에서 몰려오는 관람객과 수많은 레이스 팀으로 인해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경기 시작 후 던롭 커브에 들어서는 경주차들.

경기 시작 후 던롭 커브에 들어서는 경주차들.

역사: 100년의 세월, 4번의 거대한 변화


사르트 서킷의 역사 자체는 1923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처음부터 맨 위 문단의 구조로 되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온 서킷이니, 초창기 대회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이아웃과는 전혀 다른 구조였습니다. 서킷은 극적인 변화한 내용만 집어서 설명해도 4차례의 변화가 있었고, 자잘한 변화까지 전부 포함하면 20차례에 달하니, 이번에는 극적으로 변화한 4번의 변화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각각의 커브는 윗 문단에 쓰여 있는 이름을 기준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초창기였던 1920년대입니다. 이 시절에는 스타팅 라인에서부터 쭉 직진만 하던 레이아웃이었습니다. 즉, 현재의 모습보다 훨씬 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서킷에서 북쪽으로 약 3킬로미터 더 직진해서 퐁틸레이유(Pontlieue)라는 지역에서 예각 코너를 돌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뮬산 스트레이트(Mulsanne Straight)로 복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1929년-1931년 사이에는 퐁틸레이유 코너에서 조금 더 앞에서 두 개의 코너를 지나는 루에 두 시르퀴(Rue du Circuit)라는 코너를 잠시 동안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1923 ~ 1928년까지의 모습. 피트 스트레이트에서 퐁틸레이유까지 쭉 직진하는, 현재의 모습과는 꽤나 다른 모습입니다.

1923 ~ 1928년까지의 모습. 피트 스트레이트에서 퐁틸레이유까지 쭉 직진하는, 현재의 모습과는 꽤나 다른 모습입니다.

그 후 1932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레이아웃에 많이 근접해졌습니다. 퐁틸레이유까지 가는 루트가 잘려나갔고, 그 후에 상설 서킷으로 건설하고 던롭 커브(Dunlop Curve)를 거쳐 바로 테트르 루즈(Tetre Rouge)로 진행하는 식으로 바뀌었죠. 이러한 레이아웃은 1955년까지 사용되다가 1956년에 던롭 커브의 각을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 1964년까지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1965년에는 100% 상설 서킷으로 이루어진 부가티 서킷(Bugatti Circuit)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 후 1971년까지 자잘한 시케인만 추가한 채로 사용되다가 1972년부터 다시 한 번 극적인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서킷의 후반부 구역이 매우 복잡해지게 된 것입니다.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포르쉐 커브(Porsche Curve)가 등장하고, 종반부에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게 하는 포드 시케인(Ford Chicane)도 추가된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에게도 친숙한 레이아웃으로 변화하게 되며, 1987년 시즌에서부터는 던롭 커브 뒤에 이어지는 던롭 시케인(Dunlop Chicane)이 추가되어 현재 포르자 모터스포츠 7에 등장하는 구 멀산느 서킷으로 사용되어집니다.

그 후 1990년에 다시 한 번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스타팅 그리드가 포드 시케인을 지난 직후로 당겨지며, 뮬산느 스트레이트에 두 개의 시케인이 추가된 것입니다. 이는 당시 과도하게 빨라진 경주차들이 정신 분산 및 사고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취해진 조치로, 여기에서 거의 현재의 레이아웃이 완성되었고, 2000년대에 서킷 초반부의 던롭 커브 ~ 테트르 루즈 사이의 커브 추가 및 각도 변경 등의 조치가 취해져 현재의 서킷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글로만 설명하기엔 상상이 힘드실 테니, 영상으로 서킷의 변화를 감상해 보시죠.

[르망 서킷의 변천사. 출처는 아마존 다큐멘터리에서 Le Mans: Racing is Everything. 2017년 방영.](https://s3-us-west-2.amazonaws.com/secure.notion-static.com/8d73a914-7d09-439a-a91a-7275d27f1d39/AgtyFxr3nBCk20287oGMHb-1g93nwCjTGOhB1g72mHQ.gif.mp4)

르망 서킷의 변천사. 출처는 아마존 다큐멘터리에서 Le Mans: Racing is Everything. 2017년 방영.

사고: 최고에는 그에 맞는 희생을 요구한다


우선 동영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955년에 일어난 르망 역사상 가장 큰 사고입니다.

1955년에 발생한 르망 역사상 최악의 참사. 참고로 영상 초반의 경기 시작 장면에서 드라이버들이 차를 향해 달려가는데, 이는 그 당시의 규정으로, 드라이버들은 차까지 달려가고 시동까지 걸고 그대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1955년에 발생한 르망 역사상 최악의 참사. 참고로 영상 초반의 경기 시작 장면에서 드라이버들이 차를 향해 달려가는데, 이는 그 당시의 규정으로, 드라이버들은 차까지 달려가고 시동까지 걸고 그대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당시 메르세데스 300 SLR에 타고 있었던 프랑스 국적의 드라이버 피에르 르비(Pierre Levegh)가 오스틴-힐리 소속 드라이버 랜스 맥클린(Lance Macklin)의 차량을 무리하게 피하려다 랜스의 차량 위로 올라타게 되며 그대로 공중으로 떠 버리며 200km의 속도로 충돌 방호용 흙더미에 박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피에르는 그 자리에서 즉사, 300 SLR의 산산조각나며 불이 붙은 조각과 데브리(레이스 중 발생하는 여러 가지의 잔해)가 그대로 관중석으로 똑같은 200km의 속도로 돌격하며 83명의 사망자, 180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한 참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 사고의 책임을 지며 1985년 자우버-메르세데스 C8로 복귀하기 전까지 쭉 르망 레이스에 불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