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버지니아 인터네셔널 레이스웨이는 그 명성에 비하면 생각보다 덜 알려진 곳입니다. 우리가 무릇 미국의 유명한 서킷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열에 아홉은 데이토나나 라구나 세카 정도를 떠올리지만, 버지니아를 꼽는 이는 거의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곳이 유명하지 않거나 재미없는 곳이냐고 한다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름대로의 역사와 굵직한 레이스들도 개최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저평가된 곳들 중 하나라고 봐야 함이 옳을 듯 하네요. 이번에는 이 버지니아를 둘러 보면서 어떠한 서킷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요: 미국식 까다로움의 정수


https://goo.gl/maps/eoVoRiueAhLbsqnFA

버지니아 인터네셔널 레이스웨이는 긴 이름 때문에 종종 VIR이라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노린 것이겠지만 Virgina International Raceway의 VIR로 성립하는 동시에 가장 처음의 VIRginia로 바꿔도 어귀가 들어맞기도 하죠. 그래서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VIRginia International Raceway라 명명하고 있습니다. 편의를 위해 이하 VIR로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름 그대로 버지니아 주 알톤(Alton)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바로 노스캐롤라이나 주, 위쪽으로도 워싱턴에서 4시간 정도 걸리면 도착하는 곳입니다. 서킷 치고는(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광활함을 차치한다면) 접근성이 아주 나쁜 곳은 아니죠. 그렇기 때문인지 이 서킷을 방문하는 레이싱 팬들이 많이 찾아오는 미국의 중요한 서킷 중 하나로 취급되어 오고 있습니다.

VIR은 세부적인 트랙 레이아웃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선 대부분의 중요 경기가 치루어지는 풀 코스는 총연장 5.26km의 길이를 갖고 있고, 초중반의 급격한 헤어핀과 저속 코너, 그리고 애매한 각도의 S자 코너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트랙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곳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시원한 스트레이트가 펼쳐져 있어 드라이버와 자동차에게는 파워와 코너링의 균형을 맞추게 하는 까다로운 곳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조합이 상당한 고저차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블라인드 코너를 대처하는 것과 그립을 잘 가지고 가는 주행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가장 작은 패트리엇 코스.

가장 작은 패트리엇 코스.

패트리엇 코스는 아마추어급 레이스나 주행 동호회와 같은 영세한 규모의 레이스를 주로 치르고 있습니다. 사진은 마쯔다 미아타 NB 원메이크 레이스.

패트리엇 코스는 아마추어급 레이스나 주행 동호회와 같은 영세한 규모의 레이스를 주로 치르고 있습니다. 사진은 마쯔다 미아타 NB 원메이크 레이스.

서킷을 절반으로 잘라 놓은 뒤 북쪽으로 만든 레이아웃.

서킷을 절반으로 잘라 놓은 뒤 북쪽으로 만든 레이아웃.

북쪽 레이아웃과 같이 정반대인 남쪽으로 잘라 놓은 남쪽 레이아웃.

북쪽 레이아웃과 같이 정반대인 남쪽으로 잘라 놓은 남쪽 레이아웃.

그리고 풀 코스의 완전히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소형 서킷인 ‘패트리엇 코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레이아웃은 1.77km 길이를 가진 곳이라 무척이나 짧은 길이를 가지고 있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패트리어트 코스가 만만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 곳은 풀 코스보다 훨씬 더 급한 고저차로 인해 다음 코너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낙차가 큰 편이고, 그로 인해 앞쪽 브레이크에 가해지는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에 제동 효율이 만만치 않게 떨어져 버리는 악명높은 곳입니다. 이 코스의 총 고저차는 130피트, 미터로 환산할 시 39미터에 달하는 수치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3층 빌딩 수준의 높이를 가진 것이 되니, 얼마나 악명이 높은 지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VIR의 가장 까다로운 곳만 잡아 구성해 놓은 VIR의 최고봉인 그랜드 웨스트 코스.

VIR의 가장 까다로운 곳만 잡아 구성해 놓은 VIR의 최고봉인 그랜드 웨스트 코스.

그랜드 웨스트의 구성을 정반대로 구성해 놓은 그랜드 이스트 코스.

그랜드 웨스트의 구성을 정반대로 구성해 놓은 그랜드 이스트 코스.

이 서킷의 코너들은 서킷 자체의 고저차의 차이 때문에 각도에 비해 매우 난이도가 높은데, 7~9번(번호는 풀 코스를 기준으로 설명합니다)까지의 '클라이밍 에쎄'(Climbing Esses)가 그 예입니다. 오르막이기 때문에 블라인드 코너는 아니지만, 애매한 각도로 꺾여 있어 풀악셀로도 돌파 가능한지, 혹은 살짝 발을 떼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판단을 잘못하게 된다면 곧바로 수풀을 위시한 대자연이 당신을 반기고 있을 겁니다. 그 직후 바로 이어지는 블라인드 내리막 코너인 '사우스 벤드'(South Bend)는 블라인드 코너의 정석을 보여줌과 동시에 내리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뒷바퀴의 그립을 언제나 신경 써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바로 헛돌면서 스핀 혹은 언더스티어가 심하게 발생할 것이 뻔하죠. 그로 인해 이 서킷에서는 언제나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없지만 한때 VIR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코너는 12번 코너인 '오크나무'(Oak Tree)입니다. 이름 그대로 거대한 크기의 오크나무를 중심으로 코너가 헤어핀에 가깝게 급격히 꺾어들어가는 이 코너는 헤어핀이라기에는 각도가 완만하고 90도 코너라고 하기엔 직전 코너마저 90도에 가까워 핸들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면서도 높은 연석을 피해야 가장 최적의 속도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VIR의 숙련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코너로 남았죠. 원래는 이 곳에 오크나무가 있었고 최초 개장일부터 항상 그 자리를 지켜 왔지만, 2013년에 자연적 현상으로 인해 쓰러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휑한 곳이 되어 버렸지만, VIR 측에서 완전히 새로운 오크나무 묘목을 심어 놓아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금 우뚝 솟은 오크나무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오크나무 코너를 지나 등장하는 14번 코너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 코너는 미국의 대표적인 레이스 트랙 중 하나인 라구나 세카의 상징적인 콕스크류 코너를 따 온 것입니다. 물론 원조보다는 덜한 고저차를 가지고 있어 실질적인 난이도는 VIR쪽이 조금 더 나은 편이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입니다. VIR의 특성 상 이 코너를 만나기 직전에는 가장 긴 스트레이트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필시 250km 이상의 속도를 내고 있을 것이니 브레이크를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돌파 난이도가 천차만별로 갈라질 것입니다.

VIR의 피트 레인. 여타 다른 서킷들과는 달리 이 곳의 피트 레인은 마치 민박집과도 같은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VIR의 피트 레인. 여타 다른 서킷들과는 달리 이 곳의 피트 레인은 마치 민박집과도 같은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이러한 난해한 코스의 특성 상 이 곳은 반대로 여러 종류의 메이저급 레이스를 개최하는 곳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당장 IMSA의 가장 큰 로드 레이싱 이벤트인 웨더테크 스포츠카 챔피언십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곳 중 하나이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자동차 전문 잡지인 '카 앤 드라이버'(Car And Driver)지가 2006년부터 매년 빠른 자동차를 선정하는 이벤트인 '더 라이트닝 랩'이라는 이벤트를 열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 때의 레이아웃은 그랜드 웨스트 코스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IMSA 레이스에서는 패트리엇 코스가 너무나도 비좁은 관계로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풀 코스 레이아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