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상징적인 마운트 파노라마 서킷, 배서스트 서킷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호주 레이싱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곳입니다. 1938년부터 시작된 이 역사는 가히 호주의 자동차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호주의 레이싱이라고 하면 바로 생각나는 V8 슈퍼카 챔피언십 레이스에서도 메인 이벤트 자리를 꿰어차고 있는 곳입니다. 호주의 성향을 대변하는 듯한 위험천만한 꼬부랑 코너들의 연속, 그 코너들마저도 차가 한두 대 정도 들어갈까 말까 한 좁디좁은 넓이이며, 한 술 더 떠 V8 슈퍼카 레이서들은 그 코너를 무려 3대를 사이드 바이 사이드로 나란히 달리는 것을 보자면 가히 현 세대의 마초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마운트 파노라마 서킷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운트 파노라마, 혹은 배서스트로 불리는 이 곳은 가끔 정식 명칭이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실 이 이름을 두고 논쟁을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깊진 않은데, 마운트 파노라마로 부르든, 배서스트로 부르든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굳이 따지자면 이 서킷이 있는 곳이 호주의 뉴 사우스 웨일즈의 배서스트에 위치해 있어서 배서스트 서킷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것일 뿐, 마운트 파노라마 서킷 운영 측에서는 어느 쪽에서 불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로고를 보시면 '마운트 파노라마 모터 레이싱 서킷 배서스트' 로 표기되어 있어 결국은 둘 중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마운트 파노라마로 부르겠지만, 배서스트로 불러도 명칭 자체에는 전혀 문제 없습니다.
마운트 파노라마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우선 레이아웃이 현재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고저차부터 174미터 가량의 차이가 있어 현존하는 서킷 중에서도 지형의 높낮이가 급격하게 변하는 서킷 중 하나라는 것이고, 서킷의 너비도 매우 좁아 현재 기준으로 이름을 날리는 서킷들과 비교해 보면(특히 산 정상 부근) 공도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작기 때문에 여기에서 싸움이 벌어질 경우 매우 위험하고 짜릿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또한, 1936년 개장한 이후 단 한 번의 레이아웃의 변화 이후로 지금까지 본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매우 특별한 점이 있는데, 이 곳은 레이싱 이벤트를 하지 않을 때는 일반 공공도로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非)레이스 기간 중에는 차를 몰고 누구나 자유롭게 입장료 없이 서킷을 왕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데요, 이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곳 근처에서 사는 실제 거주민들이 차로 나갈 수 있는 진출입로가 이 마운트 파노라마 서킷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폐쇄되지 않을 시에는 23번 머레이 코너(Murray's Corner)에서 진입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 곳을 노리고 오는 레이서 지망생(?)들이 벌일 지도 모르는 사고를 대비해 이 곳의 제한 속도는 언제나 60km로 고정되어 있으며, 호주 경찰이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있기 때문에 감시가 비교적 삼엄한 편입니다. 만약 이 곳에 갈 일이 있다면 단속에 주의하도록 하세요. 언제나 명심할 것은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공도로 사용되는 곳이라고는 해도, 역시나 그 분위기에 휩쓸려 급발진해 버리는 폭주족을 잡기 위해 이 서킷의 일반 방문 시에는 상당히 빡빡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서킷의 구성은 비교적 시원한 스트레이트가 있는 평지 지역과 지옥 그 자체로 대변되는 산맥 지역이 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탈출 가속을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의 싸움이고, 산맥 코스는 드라이버의 깡과 정교한 코너링 실력을 요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위의 레이아웃을 보시면 알겠지만, 꼬불꼬불한 코너가 산개한 것으로도 모자라 저 곳이 죄다 경사진 곳으로 되어 있어서 제동/가속 타이밍을 좀처럼 감을 잡기 힘들게 만들어져 있어 험난한 산길 고행을 강요합니다.
스타팅 그리드와 피트. 지금의 서킷들과 비교하면 정말로 짧은 스타트 스트레이트가 이 서킷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듯합니다.
1번 코너의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데, 대놓고 지옥이라고 하는 헬 코너가 있습니다. 에이펙스 쪽에 위치한 나무기둥이 있는 것에서 따온 이름인데, 과거 모터사이클 드라이버들이 이 기둥에 부딪히면 어리석음에 대한 댓가로 죽음에 이르고 결국 영원한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굳이 이 기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작 직후에 나오는 직각 코너가 이리저리 엉킨 차들을 피하지 못하면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법합니다.
2번부터 나오는 쿼리(Quarry)부터 본격적인 힐클라임이 시작됩니다. 3번에서부터 시작되는 더 커팅(The Cutting)에서부터 급격히 제동, 그 후 바로 급경사가 시작되고, 휠스핀을 잘 제어하면서 6번 그리핀즈 마운트(Griffin's Mount)에서 얼마나 속도를 잘 보존하면서 달리느냐에 따라 랩 타임이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산 중턱 즈음 되는 7~9번으로 이어지는 넓은 각도의 코너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공존하고 있어 어디서 어떻게 언제 제동하면서 선회하느냐에 따라 스무스하게 통과하는지, 반대쪽 벽에 차를 박아 버릴지를 심판해 주는 악랄한 곳입니다. 드라이버의 깡을 시험하는 대표격 코너가 되겠습니다.
힐클라임 중인 닛산 알티마 V8 슈퍼카. 산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V8 차량의 울음소리는 참으로 웅장하다고 합니다.
산 정상의 맥필래미 파크(McPhillamy Park)에서도 관중이 구경할 수 있습니다. 벽 끝까지 근접하는 차량들을 보면 매우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고 합니다.
산 정상을 거쳐 11번부터 시작되는 스카이라인(Skyline)부터 다운힐이 시작됩니다. 물론 기행의 나라 영국의 DNA가 섞인 호주인들이 만든 트랙답게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습니다. 내리막을 무려 6개의 자잘한 S자 코너들의 연속으로 꼬아 놓았고, 설상가상으로 트랙의 너비를 가장 좁게 해 놓아 사이드 바이 사이드 상황을 일어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충돌 완화를 위한 그래블이나 잔디는 전혀 없고요. 물론 만약 선행 차량이 충돌이 난다면? 바로 후위 차량도 즉각적으로 휘말려 트랙 자체를 막아버릴 정도의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18번 더 디퍼(The Dipper)에서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거의 내리꽂아 버린다는 설명이 적절할 정도의 급하강 뒤 곧바로 예각 코너를 돌아 나가야 하는데, 이게 무척이나 어려워 예상보다 늦게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바로 외벽에 직격, 리타이어로 이어지거나 후위 차량과 꼬여 버리는 환상(장)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운힐의 참맛을 느끼기에 이만한 코너 또 없습니다.
머레이 코너에서부터 이렇게 일반 차량이 진입 가능합니다. 물론 상기한 대로 법규만 잘 준수한다면 쾌적한 순례가 가능합니다.
그 이후는 콘로드 스트레이트로 잠깐 숨을 고르고 21번 더 체이스(The Chase)에서 급제동을 걸고 오르막 좌회전으로 돌아 나간 뒤, 공도로도 이어지는 길목이 있는 머레이 코너의 직각 커브를 돌면 마운트 파노라마의 1랩이 끝나게 됩니다. 잠깐의 자비 후 몰아치는 힐클라임-다운힐 연속, 그 후 잠깐의 휴식 후 확 꺾는 직각 코너로 이어지는 조합이 인상적인 코스입니다.
물론 이렇게 어려운 코스를 재패한 뒤의 희열은 어느 때보다 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포르자 모터스포츠 시리즈 한정으로 특이한 사실이 있는데, 초기작인 1편에서는 배서스트의 라이센스를 얻지 못했는지 레이아웃이 비슷한 블루 마운틴즈 레이스웨이(Blue Mountains Raceway)라는 이름으로 추가시켜 놓았습니다. 물론 턴텐 스튜디오의 오리지널 서킷 제작 성향은 그 때부터 빛을 발해 원판보다 더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