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르퀴 드 스파 프랑코샹(Circuit de Spa-Francorchamps)에 오신 여러분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벨기에의 가장 유명한 서킷이자 F1의 성지 중 하나이며 스파 24시간 내구 레이스와 1000km 장거리 레이스로 대표되는, 드라이버의 실력은 물론이고 체력과 집중력까지 모두 요구하는 악명높은 서킷입니다. 총연장 7km에 달하는 이 긴 서킷에서 여러분의 집중력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이 서킷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파 프랑코샹 서킷의 전도. 드라이버들은 고속 구간부터 더블 에이펙스, 중고속 코너들과 정교한 조작을 요하는 헤어핀 및 시케인이 혼재된 고난이도의 서킷을 주행하게 됩니다. 참고로 2018년 이후로 11번 코너는 자국인 벨기에 태생의 유명 드라이버인 재키 익스(Jackie Ickx)의 커리어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재키 익스 코너로 명명되었습니다.

스파 프랑코샹 서킷의 전도. 드라이버들은 고속 구간부터 더블 에이펙스, 중고속 코너들과 정교한 조작을 요하는 헤어핀 및 시케인이 혼재된 고난이도의 서킷을 주행하게 됩니다. 참고로 2018년 이후로 11번 코너는 자국인 벨기에 태생의 유명 드라이버인 재키 익스(Jackie Ickx)의 커리어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재키 익스 코너로 명명되었습니다.

개요: 수많은 드라이버들의 한이 서린 곳


스파 프랑코샹, 정식 명칭은 시르퀴 드 스파 프랑코샹이라고 불리우는 이 곳은 사실 이름에서부터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서킷이 밸기에의 스파(Spa) 지역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스타블롯(Stavelot) 지역과 프랑코샹 마을에 걸쳐 자리하고 있죠. 스파 지역은 트랙이 위치한 곳보다 더 북서쪽으로 가야만 나오는데 왜 이름을 스파 프랑코샹으로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스파 프랑코샹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바로 대답할 오 루즈. 사실 오 루즈는 사진의 바로 앞에 있는 살짝 왼쪽으로 굽어진 곳이고, 오르막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곳은 라이딜롱입니다.

스파 프랑코샹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바로 대답할 오 루즈. 사실 오 루즈는 사진의 바로 앞에 있는 살짝 왼쪽으로 굽어진 곳이고, 오르막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곳은 라이딜롱입니다.

오 루즈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지지 않는 난코너인 뿌옹.

오 루즈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지지 않는 난코너인 뿌옹.

트랙 자체는 한 마디로 말하면 거를 타선이 없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것만 같은 케멜 스트레이트(Kemmel Straight), 연속되는 중속 코너링으로 차체에 부담을 주는 레 콤브레(Les Combres), 내리막과 이어지는 긴 좌회전 코너인 뿌옹(Pouhon), 급격한 감속 뒤 정교한 코너링을 요하는 시케인과 라 소스(La Source) 해어핀 코너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서킷을 유명하게 해 준 곳은 무엇보다도 급경사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오 루즈(Eau Rouge)와 바로 이어지는 라이딜롱(Raidillon)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코너도 만만치 않지만 특히 이 오 루즈와 라이딜롱 코너는 드라이버의 숙련도에 따라 기록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고속으로 돌파해야만 합니다. 물론 거기에서 따르는 리스크와 그로 인한 결과는 덤입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여러 드라이버가 오 루즈에서 더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도전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드라이버들의 목숨을 댓가로 가져가게 한, 악마의 코너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코너입니다.

오 루즈의 역사를 모아놓은 영상. 오 루즈는 지금까지의 레이아웃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모습을 달리 했다는 것을 이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 루즈의 역사를 모아놓은 영상. 오 루즈는 지금까지의 레이아웃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모습을 달리 했다는 것을 이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이 서킷은 그 자체로 가진 명성이 매우 높지만, 의외로 레이스 이벤트 자체는 그렇게 많이 유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이벤트들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급의 이벤트라는 것이 다를 뿐이죠. 우선 가장 유명한 포뮬러 원 벨기에 그랑프리의 주 무대이고, GT3급 레이스카들의 격전이 펼쳐지는 블랑팡 내구 레이스 시리즈, WEC와 6시간 내구 레이스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의 격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파에서 열리는 경기라고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은 보증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셈이죠. 물론 레이스 이벤트 뿐만이 아닌 옛날의 명차/레이스카를 다시 달리게 하는 스파 클래식(Spa Classic) 이벤트도 매번 열리고 있습니다.

F1 벨기에 그랑프리는 스파 프랑코샹이 무대로 선정됩니다. 오픈 휠 레이스 카들의 거침없는 코너 공략을 볼 수 있죠.

F1 벨기에 그랑프리는 스파 프랑코샹이 무대로 선정됩니다. 오픈 휠 레이스 카들의 거침없는 코너 공략을 볼 수 있죠.

블랑팡 내구 레이스 캘린더에 속해 있는 스파 24시간.

블랑팡 내구 레이스 캘린더에 속해 있는 스파 24시간.

WEC 주최의 스파 6시간 내구 레이스.

WEC 주최의 스파 6시간 내구 레이스.

역사적인 명차를 다시 달리게 하는 스파 클래식.

역사적인 명차를 다시 달리게 하는 스파 클래식.

이렇게 화려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서킷이지만, 사실은 잠깐 동안이지만 F1 캘린더에서 스파 서킷이 누락된 적이 있었습니다. 2003년과 2006년이 그 때인데요, 2003년에는 유럽 연합에서 제정된 TV에서의 담배 광고 금지 조항으로 인해 F1 경기의 주요 스폰서들이었던 담배 회사들의 입지가 매우 위태롭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이러한 금지 조항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벨기에의 정치적 압력에 대한 답변으로 F1 캘린더에서 벨기에 그랑프리를 제외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에 당황한 벨기에 상원 측은 F1 벨기에 그랑프리를 세계적 수준의 이벤트로 제정하여 겨우겨우 F1 측을 달랬고, 그러한 결과로 이듬해인 2004년부터는 다시 문제없이 F1 캘린더에 복귀하는 등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2006년에는 매우 어이없는 이유로 제외되었는데, F1 이벤트의 개최자급 회사가 2005년 말에 부도가 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랙 자체와 패독의 개선 작업 등의 계획이 무산되면서 중간에 공사가 멈추게 되었고, 스파가 위치한 곳인 왈롱(Wallonia) 지차체에서 직접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어 경기에 필요한 설비가 결국 완공되지 못해 2006년 벨기에 그랑프리는 개최되지 못했습니다.

역사: 수많은 드라이버들이 왔다 간 죽음의 서킷


1920년, 프랑스의 훈작사인 줄스 드 띠에르(Jules de Thier)와 레이싱 드라이버인 알리 랑글루아 반 오펨(Henri Langlois Van Ophem)이 세 곳의 마을인 프랑코샹, 말메디와 스타블로를 잇는 공도를 사용하여 삼각형 형상의 서킷을 디자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잇는 32번, 23번과 440번 국도를 활용하여 만든 이 서킷을 자동차 경주를 위해 이듬해인 1921년에 정식 레이스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경기는 끝내 열리지 못했는데요, 이 서킷에서 달리기 위해 드라이버 등록을 마친 경주차가 단 한 대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서킷 치고는 꽤나 의외의 기록을 남긴 채 그 레이스는 그대로 모터바이크 레이스로 대체되었고, 노턴(Norton)제 500cc 바이크를 몰면서 평균 90km를 달린 하살(Hassal)이라는 선수가 우승하게 됩니다.

다시 그 다음 해인 1922년, 이번에는 벨기에 왕립 자동차 클럽이 직접 이 서킷에서 벨기에 그랑프리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 덕인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레이스를 개최할 정도의 인원을 모집한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는 문제 없이 치러졌고, 토르나코-브루예레 남작(Baron de Tornaco-Bruyere)이 몬 임페리아-아바달(Imperia-Abadal, 1910년대에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자동차 회사로, 정식 명칭은 아바달. 1916년에 뷰익 에이전시를 인수해 1920년대의 모델에는 뷰익제 엔진이 들어가기도 했으며 1923년에 사라짐)이 우승을 거두었습니다.

토르나코 남작이 주행한 임페리아-아바달 경주차. 뷰익을 인수한 직후여서 그릴에 뷰익 마크가 큼지막히 적혀 있습니다.

토르나코 남작이 주행한 임페리아-아바달 경주차. 뷰익을 인수한 직후여서 그릴에 뷰익 마크가 큼지막히 적혀 있습니다.

오 루즈와 라이딜롱이 만들어지고 난 직후로 추정되는 사진. 지금의 모습보다 더 굽어진 모습이 인상적으로, 저 당시의 레이스카로 저런 코너를 돌아나가야 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저 옛날의 드라이버들의 배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 루즈와 라이딜롱이 만들어지고 난 직후로 추정되는 사진. 지금의 모습보다 더 굽어진 모습이 인상적으로, 저 당시의 레이스카로 저런 코너를 돌아나가야 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저 옛날의 드라이버들의 배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 루즈라고 불리는 이유인, 서킷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붉은 물로 덮인 호수. Eau Rouge라는 말 자체가 붉은 물을 뜻하기도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오 루즈라고 불리는 이유인, 서킷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붉은 물로 덮인 호수. Eau Rouge라는 말 자체가 붉은 물을 뜻하기도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시간이 조금 흐른 1939년, 스파 서킷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오 루즈와 라이딜롱 코너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경사각 17%에 달하는 이 급격한 코너는 물론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오 루즈로 알려졌으며, 장차 스파 프랑코샹 서킷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일등 공신 격 코너가 되겠습니다. 참고로 이 코너는 현재로서도 풀 악셀로 돌아나갈 수 있는 자동차는 F1급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